도구만큼이나 손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아요.
실제로 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면, 도구에 문제가 있거나 도구가 저랑 안 맞는 경우가 있더라고요.
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이어 나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?
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촉감에 무척 예민한 것 같아요. 제 작업은 순수 예술보다는 공예 가까운데 그 이유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졌을 때의 느낌이 좋아서예요. 손으로 작업을 하는 게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도 있고요. 무딘 칼날을 자르고 종이를 재단할 때의 만족감이나, 물감을 섞을 때의 유연함, 가죽에 착 붙는 느낌 등 이런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어려운 작업이에요. 물론 촉감뿐만 아니라 소리도 중요해요. 종이 자를 때 소리도 좋고요. 그런 과정들을 즐기면서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.
스탬프 작업을 좋아하시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 걸까요?
손으로 무언가를 찍고 누르는 걸 좋아하는 게 인간의 습성이잖아요(웃음). 내가 무슨 행위를 했는데 바로 반응이 오니까요. 더해서 어릴 때 선생님들이 ‘참 잘했어요’ 도장을 찍어주거나, 어른들이 집안의 중요한 문서를 찍을 때 도장을 사용했던 것을 보면서 스탬프가 중요한 물건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. 지금은 물론 그게 아니구나 깨달았지만 제게 여전히 신기한 물건이에요. 정말 섬세하게 표현되고, 오려서 붙이면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고요. 이제는 스탬프와 잉크 패드가 정말 다양하게 나와서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어 모으게 되었어요. 제게 스탬프 자체가 너무 중요하고 재미있는 소재인 것 같아요. 모으다 보면 갑자기 꽂혀서 공격적으로 모을 때도 있고요.
어떤 스탬프에 꽂히셨어요?
한동안 라벨 스탬프를 모았어요. 친밀도가 높기도 하고, 활용도가 많아서요. 또 열쇠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한참 썼거든요. 당시 열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, 그 시기에는 열쇠 스탬프을 많이 모았었죠. 일단 모을 수 있는 개체수가 많은지 확인해 보고 눈에 들어올 때마다 사는 것 같아요. 이니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알파벳 세트 스탬프도 꽤 많고요. 하지만 저는 모으기 위해서 모은다기보다는 ‘쓰기 위해서’ 모아요. 관상용으로 모으는 것들은 잘 없어요. 그렇게 모으는 건 노트나 책 정도가 있겠네요. 쓰기 위해서 모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죄책감이 덜하죠.
수집의 의미도 크실 것 같았는데, 사용하기 위해 모은다는 게 인상 깊어요.
겉으로 보기엔 수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일단 제가 쓰지 않을 건 거의 사지 않거나 만들지 않아요. 대부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면서 소재나 방법에 대해 깊게 탐구하는 편이죠. 쓰임새가 있는 게 좋아요. 그래서 제가 만든 것들도 사람들 옆에 가까이 두고 잘 소모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. 강의도 비슷한 것 같고요. 학생들에게 소모되고 싶다고 생각해요.